칼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복한 마음의 삶의 양식을 전하는 전농교회 목사님들의 칼럼입니다
저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를 좋아합니다. 예수님 다음으로 흠모하는 인물이 바흐일 것입니다. 그는 제 안에서 신앙과 삶, 삶과 음악이 화해하여 하나로 어우러지게 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그의 음악이 좋았을 뿐이었습니다. 우주만큼 깊고, 우주만큼 신비로우며, 우주만큼 질서정연한 그의 음악은 너무나도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바흐라는 사람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으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의 실제 성격은 어떠했으며 가정생활은 어떠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관심은 단지 ‘팬심’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은 그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바흐의 곡은 ‘미뉴엣’일 것입니다. 영화 ‘접속’을 통해 더욱 유명해 진 ‘G장조 미뉴에트(Minuet in G major BWV anh. 114)’말입니다. 사실 ‘미뉴엣’은 이 곡의 제목이 아니라 이 곡에 쓰인 3/4박자의 춤곡을 의미하지만 이 곡이 너무나도 유명하기 때문에 이 곡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습니다.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배워 보신 분이라면 분명 이 곡을 연주해 보셨을 것입니다. 그만큼 쉬운 곡이며 친근하고 밝고 명랑한 곡입니다. 이렇게 단순한 음악이 위대한 명곡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런 면에서 바흐의 음악은 복음과도 참 많이 닮았습니다.
바흐는 ‘Clavier-Büchlein für Anna Magadalena Bach’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모음집) 두 개를 썼는데 첫 번째의 것은 결혼 이듬해인 1722년 쾨텐에서, 이 곡이 실린 두 번째의 것은 1725년 라이프치히에서 썼습니다. 이 두 권의 책에는 사랑스런 어린 아내(15세 차이로 안나는 결혼 당시 스무 살이었음)를 위해 쓴 클라비어(바흐시대의 건반 악기)연주곡들과 노래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바흐가 왜 젊은 아내에게 이 두 권의 악보집을 선물했을까요? 역사적 접근보다는 그 악보집에 수록된 곡들을 살펴보면 명확해집니다. 미뉴에트의 선율을 읊조려 보시기 바랍니다. 바흐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아내를 생각하는지 금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두 권의 책에는 유독 미뉴에트가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menuet'란 원래 바흐시대 프랑스 궁정(루이 14세)에서 자주 연주된 3박자의 우아하고 앙증맞은 춤곡입니다. ‘menu’라는 뜻 자체가 프랑스어로 ‘작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제 생각으로 바흐는 15세 어린 스무 살 아내가 너무 예뻐서 마치 왕실의 공주처럼 사랑스럽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흐와 안나의 삶을 알고 난 후 이 음악 노트에 실린 음악들을 들을 때 뭔지 모를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는 것은 왕실의 공주처럼 사랑스러운 어린 신부에게 넉넉지 않은 살림과 전처와의 사에서 태어난 네 명의 아이를 맡겨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미안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안나 막달레나는 음악 가문에서 태어나서 아버지와 외삼촌 등에게서 음악 수업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음악가로서 나름 활동하던 아내가 이제는 꽃다운 나이에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바흐 역시 여간 마음이 아픈 게 아니었을 것입니다. 값비싸고 화려한 선물은 아니어도 바흐는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을 정성스럽게 담아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적 능력이 출중했지만 살림과 육아로 인해 집을 도무지 비울 수 없는 아내에게, 그리고 이제 막 건반을 배우기 시작한 아내에게 바흐는 손수 악보집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악보집에 ‘Buch(책)’라는 이름 대신에 ‘작고 소중한’이라는 의미의 축소형 어미 ‘~lein’을 써서 ‘Büchlein(뷔히라인)’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근엄하고 진지한 줄로만 알았던 바흐의 사랑꾼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사랑을 낭만적으로만 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녀가 남편의 사랑을 받은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그녀는 결코 안락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남편과 사별한 전처 사이에서의 4명의 아이들뿐 아니라 안나는 결혼 후 40년 동안 13번의 출산을 하고 8명의 아이를 잃었으며 총 9명의 아이를 키워냈는데 그 삶이 오죽 힘들었을까요? 바흐의 수입도 넉넉지 않았고 특히 남편 바흐가 죽은 뒤 아들들마저 떠난 그녀의 마지막 10년은 구호품으로 연명하는 빈민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어서는 이름도 없는 빈민 무덤에 묻혔으며, 그 무덤마저 2차 대전 때 파괴되었습니다.
바흐와 그의 아내 안나에 대해서 알고 이 음악과 얽힌 그들의 삶을 알게 되면 밝고 명랑한 줄로만 알았던 미뉴에트에 모종의 애틋함이 실려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왠지 모를 슬픔과 삶의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모음집 2권에서 G장조 미뉴엣 다음 곡은 G단조 미뉴엣(Minuet in G minor BWV anh. 115)입니다. 하나는 장조이고 다른 하나는 단조이지만 두 곡은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이 두 곡은 겹세로줄로 분리 되어 있는 것 같지만 서로가 서로를 완성시킵니다. 이 두 곡이 함께 연주될 때에 비로소 하나의 음악이 완성됩니다. 밝은 장조와 어두운 단조가 비슷한 모양새로 하나의 곡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네 삶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바흐와 안나의 개인사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과 죽음, 환희와 슬픔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흐의 음악에는 이렇듯 인생에 대한 애틋함과 받아들임의 영성이 스며있습니다. 바흐 음악의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어떤 곡이건 간에 심지어 가사가 없는 곡조차도 듣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영적인 깊은 곳으로 연결해 주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흐의 음악에는 삶에 대한 관조가 서려 있고 삶의 현실을 감내하고 그 한계를 초월하게 해 주는 그리스도적 능력을 이야기하되 도그마가 아닌 그 음악의 존재적 힘으로 그 능력을 전달합니다.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단순하고 짧은 한 곡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음미하기 위해서 작곡가의 삶을 알아야 하고 이 곡에 얽힌 사랑의 이야기를 알아야 하듯 예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천국 복음과 십자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의 마음과 우리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을 깨달아야합니다.
우리 모두 남은 사순절 기간 동안 예수께 온전히 집중하여 그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예수의 말씀과 십자가의 은혜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그에게 더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와 예수의 마음을 더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예수 더 알기 원하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조진호 목사
1. 영화 '접속'의 OST
(미뉴엣은 2번과 3번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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