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복한 마음의 삶의 양식을 전하는 전농교회 목사님들의 칼럼입니다
이번 주 월요일(4일) 서울에 벚꽃이 폈습니다. 이번에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인데 '서울에 벚꽃이 피었다'고 공식적으로 선포되려면 종로구 경희궁 옆에 있는 서울기상관측소 내의 표준목 벚나무에 꽃 세 송이가 피어야 한다고 합니다.
혹시 전자레인지용 팝콘을 프라이팬에 튀겨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간식으로 팝콘을 해주려다가 크게 당황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미동도 없이 조용하다가 알갱이 몇 개가 터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냄비 뚜껑이 들릴 정도로 폭발하듯 팝콘 꽃이 피어나다가 결국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처럼 여기저기로 튀어 올라 주방이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매 년 이맘때면 겪는 일이지만 벚꽃도 늘 그렇게, 갑작스럽고도 놀랍게 피어납니다.
그리고 꽃이 피었다 싶으면 이내 봄비가 내리고 빗방울의 무게를 짊어진 가녀린 꽃잎들은 장렬하게 산화하듯 너무나 허망하게 져버립니다. 그러한 벚꽃의 야속한 생리를 알기에 아마 다들 꽃구경 할 생각에 조바심 어린 한 주를 보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침착하고 느긋하게 몇 주 뒤에 만개할 또 다른 벚꽃을 기다립니다. 모름지기 우리 강산의 벚꽃은 일본식으로 길거리 좌우에 인위적으로 심어져 한꺼번에 피는 것보다 신록이 가득한 늦봄의 산속에 듬성듬성 자리한 커다란 산벚나무에서 피어난 것이 더 아름답습니다. 산벚나무 꽃은 그 꽃이 질 때도 참 아름답습니다. 꽃잎을 흩뿌리기도 하고 나무아래 땅 위로 분홍빛 원형 카펫을 깔아 놓기도 하며 시냇물 위에 꽃잎을 가득 띄워 떠나는 봄바람을 배웅하는 꽃길을 만들어 주기도합니다. 4월 말에 삼각산 도처에 흐르는 계곡 길을 걷다 보면 그와 같은 우리의 토종 산벚나무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여의도 이전에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벚꽃 길은 남산이었습니다. 남산의 벚꽃 길이 왜 유명했을까요? 남산에 일제가 세운 가장 커다란 신사 ‘조선신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제는 신사로 가는 길 주변과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사찰 ‘박문각(현 신라호텔 자리)’ 주변에 그들이 좋아하는 벚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남산 위의 저 소나무’들은 점점 그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5~6년 전 제 아들이 초등학교 3~4학년일 때 음악 교과서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때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 음악교과서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대중가요는 물론이고 우리에게 생소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민요도 다양하게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 일본 민요가 실려 있어서 깜짝 놀랐었습니다. 에도시대의 민요 ‘벚꽃’이라는 곡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우리말 가사 밑에 ‘사쿠라 사쿠라 노야마모 사토모...’라고 일본 발음이 병기되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의 전통 시 하이쿠와도 같은 정갈한 가사가 좋았고 일본의 느낌이 물씬 나는 음계가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격세지감을 느꼈으며 한국 음악교육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벚꽃이 벚꽃이
산속에도 들판에도
멀리 바라보니
안개인지 구름인지
아침향기 퍼지네
다 같이 모여서
꽃놀이 가자
일본 민요 ‘벚꽃’은 ‘봄 처녀 제 오시네’와 같은 우리의 봄노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참으로 좋은 노래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은 이 노래가 교과서에 실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계를 비롯한 이곳저곳에서 일본 노래를 초등학생들에게 왜 가르치느냐며 항의가 들어와 결국 교과서에서 삭제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심각한 이율배반입니다. 일본의 엔카를 고스란히 계승한 트로트를 국민가요로 여기며 열광하는 사람들이, 음악적으로 볼 때 일본 가곡이나 다름없는 초기의 한국 가곡들을 애창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산벚꽃 보다 일본식의 벚꽃 놀이에 더 열광하는 사람들이, 정작 문화적 다양성에 입각하여 존중하고 나누어야 할 일본의 고유한 문화에 대해서는 이토록 경기어린 반응을 하다니 말입니다. 그러한 태도는 오히려 피해의식이나 우리의 고유한 것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생긴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온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벚꽃들이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고서는 그토록 예쁘고 화려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벚꽃을 맞이하는 예쁜 마음에 찬물을 끼얹을 마음일랑은 조금도 없습니다. 일본의 영향을 받은 벚꽃놀이 문화를 비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벚꽃이든 사쿠라든 간에 꽃은 꽃이요 꽃을 좋아하는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러시아가 불의한 전쟁을 일으켰다 해서 톨스토이와 차이코프스키의 예술에 돌을 던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에 함께 감동하면 기쁘듯이 아무리 미운 일본이라 할지라고 그들의 문화는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한 하나님이 주신 각 민족의 문화를 함께 나누며 함께 누려야 할 것입니다. 온 세상 온 민족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우리 민족의 얼을 사랑하는 것만큼 다른 민족을 존중하는 모습 또한 기뻐하십니다. 벚꽃과 사쿠라는 같은 꽃입니다.
-조진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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